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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춘기념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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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춘기념관
우장춘기념관 소개

우장춘기념관

기념관 소개

씨 없는 수박으로 우리 모두에게 잘 알려진 세계적 육종학자인 故 우장춘 박사의 탄생 1백주년을 맞아 그의 생전 연구 활동 유적지인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2동 850-48번지에 건립한 기념관은 1999년 10월 21일 개관하였으며, 대지면적 약 1,000㎡(3백여 평), 연건평 241㎡(73평) 규모의 지상 2층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1, 2층을 전시실로 구성하였고 야외마당에는 자유천과 우 박사의 흉상이 잘 다듬어진 조경 시설과 함께 아담하고 짜임새 있게 놓여져 있다.

기념관의 설계는 자유천에 시선이 집중되도록 전시공간을 선형으로 유도하고 원형 형태의 곡선미를 가미하였으며 외부마감을 신 건축공법인 노출 콘크리트 기법을 도입하였다. 이 기념관을 다녀간 많은 관람객이 이 건물의 아름다움과 1, 2층 전시실의 알찬 전시물, 야외마당에 넓게 깔린 자갈과 흉상, 자유천 등을 보고는 「도시 속의 작은 미술관」이라고 칭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는 청소년학습장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을 만큼 우리나라 육종학에 대한 변천 과정이 알기 쉽게 패널과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다.

야외마당에 있는 우물인 ″자유천″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젖과 같은 샘이라는 뜻으로 우 박사의 모친이 일본에서 임종하였을 당시 정부의 통제로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자, 각지에서 푼푼이 들어 온 부의금으로 그 당시 물이 부족한 농장에 우물을 파서 연구소는 물론 물이 부족한 주위 사람들과 공동으로 사용하였으며, 매일 아침 우물 주위를 청소하는 것으로 하루 일을 시작했다고 하는 우 박사의 애정과 얼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는 우장춘 박사의 끊임없는 연구 정신과 육종학에 대한 세계적 업적을 영원히 기리고자 미남교차로에서 식물원 간 도로를 우장춘로로 명명하였다.

우장춘 박사 소개

'씨 없는 수박'으로 우리 모두에게 잘 알려진 우장춘 박사는 1950년대 자본과 기술의 부족으로 황폐해진 한국농업의 부흥을 위해 혼신을 다 바친 세계적인 육종학자이다. 우장춘 박사는 일본 도쿄에서 구한말 일본으로 망명한 아버지 우범선과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어린 시절 극심한 빈곤과 주위의 학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일본 동경제국대학 농학부 실과를 졸업했으며, 일본 농림성 농업시험장에 취직, 1937년 퇴직할 때까지 18년간을 육종학 연구에 몰두해 2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특히, 종의 합성을 실증한 박사학위 논문, 배추속(Brassica) 작물의 게놈분석은 다윈의 진화론에 나오는 "종은 자연도태의 결과"로 성립된다는 설에 보충을 가한 것으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50년 조국의 초청으로 귀국해 1959년 타계할 때까지 만 9년 5개월간 박사는 한국과학연구소장, 중앙원예기술원장, 원예시험장장을 역임했고, 그동안 탁월한 육종지식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지역과 기후에 맞는 여러 가지 농작물 등을 끊임없이 연구하였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식량자급 달성을 위한 증산기술과 무, 배추 등 채소 종자의 자급자족이었다. 일본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종자를 구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1954년에 결구배추인 원예 1호가 육종 발표되었고, 그 이후 수많은 원예작물의 품종개량과 신품종이 보급되었다. 양이 많으면서 품질이 좋은 볍씨 종자를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개량된 무, 배추 종자를 전국에 보급하였다. 또한 척박한 강원도의 바위땅에 그 유명한 '강원도 감자'를 육종 시켜 강원도의 특산물이 되도록 하였으며, 제주도에는 '제주도 귤'이 열리도록 하였다. 특히, 우량 종자보급 시 농민들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1953년에 '씨 없는 수박'을 생산하였다. 이로 인해 제자들도 육종학의 원리를 체감하였고, 농민들도 한국 농업기술이 뛰어난 것을 믿게 되었다.

또한, 우장춘 박사는 후진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여 박사께서 양성한 이들이 국가연구소와 민간종묘회사 등 각 분야에 진출해 우리나라 원예학과 민간육종의 눈부신 발전을 이루는데 큰 초석을 다지고 있다. 민족을 위해 자신을 바쳐온 노력으로 우리나라 근대농업을 개척한 우장춘 박사,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제1회〈부산시 문화상〉을 수상했고, 건국 이래 두 번째로 대한민국〈문화포장〉을 수상하였다.우장춘 박사는 1959년 8월 10일 향년 61세로 생애를 마쳤다. 그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으며 유해는 경기도 수원에 있는 농촌진흥청 구내의 여기 산에 안장되어있다. 2006년부터 우장춘 박사 서거를 맞아 우장춘 기념관에서 '부산시민 추모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추모기간 동안 원예시험장 견학 등 다양한 체험행사를 병행하고 있다.